HOME | INSIDE


 로그인  회원가입

2014년 8월 17일 주일예배 진신덕 목사님 설교 및 요약
관리자  2014-08-18 12:58:27, 조회 : 5,085

2014년 8월 17일 진신덕 목사님의 주일예배 설교입니다.

제목 :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같이 (In the same way that I had mercy on you)
말씀 : 마태복음 (Matthew) 18:21-35



*-- 설교 요약 --*

1. 오늘 나는 - 내가 먼저 손 내밀지 못하고.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수 있습니다>

최용덕 작사 ∙ 작곡의 <오늘 나는-내가 먼저 손 내밀지 못하고>(찬양 약하게 틀어주세요!)라는 제가 좋아 하는 찬양곡이 있습니다. 어쩌면 딱 제 마음과 삶을 그렇게 리얼하게 잘 그려내었는지 부르고 들을 때마다 감탄을 금치 못합니다. 오늘 제가 아무리 설교를 잘 해도 이 찬양곡만큼 은혜와 감동을 줄 자신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21세기는 <분노 조절 장애>라는 무서운 병을 안고 사는 시한폭탄 같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내가 힘 센 사람한테 당한 것을 나보다 약한 사람에게 퍼붓는 “종로에서 빰맞고 한강에서 화풀이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우리 크리스천들은 변화된 새사람으로 살아야 하지만 “제 버릇 개 못 주고” 옛사람의 못 된 습성을 그대로 가지고 끙끙거리며 사는 나는 아닌가를 돌아봅니다.

2.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오늘 성경 본문은 18장 1절에 나오는 제자들이 예수님께 한 질문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예수님은 4절에서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큰 사람이다.” 라고 대답하십니다. 6절에서는"나를 믿는 이 작은 사람 가운데서 하나라도 걸려 넘어지게 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차라리 그 목에 큰 맷돌을 달고 깊은 바다에 빠지는 편이 낫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만큼 우리는 믿음의 식구들에게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엄한 경고를 하십니다. 이어서 10-14절에서 <잃은 양의 비유>를 통해 길 잃었던 성도 한 사람이 돌아오는 것의 소중함을 역설하십니다. 15-20절에서 믿음의 형제가 내게 죄를 지을 때 ①일대일 권면, ② 한두 사람과 함께 권면, ③교회가 권면, ④그래도 듣지 않으면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그래도 연약한 죄인들입니다. 그래서 고의든 아니든 형제 자매에게 죄를 지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것을 내가 깨달을 때도 있고, 무심결에 그냥 넘어갈 때도 있습니다. 깨달은 즉시 죄지은 사람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면 좋을텐데 자존심 때문에 미루기가 쉽습니다. 나는 모르고 넘어갔는데 상대는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기도 합니다. 알아도 제때 잘 처리하지 못해 문제를 키우고, 몰라서 남만 속알이를 하게 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실상입니다. 이런 개인간의 사소한 감정의 문제가 나비효과를 불러와 교회 전체를 폭풍 속으로 몰아넣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늘 말씀 위에 서 있어야 하고, 기도 가운데 죄 문제에 민감해야 합니다. 엄청난 죄가 아니라 사소한 해결되지 않은 죄가 거대한 후폭풍을 일으키기 십상입니다.

예수님의 이런 교훈의 연장선상에서 나서기 좋아하는 베드로가 예수님께  21절"주님, 내 형제가 나에게 자꾸 죄를 지으면, 내가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하여야 합니까?" 라고 질문합니다. 보통 유대 랍비들은 세번까지 용서하라고 가르쳤는데 대인배인 베드로는 통 크게 일곱 번 용서하면 되겠습니까 여쭌 것입니다. 나는 내 아내가,  아이들이, 친구들이, 믿음의 식구들이 내게 크든 작든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줍니까? 내가 죄 지은 것은 무한대로 이해하고 용서해 주기를 바라면서 남의 죄는 손톱만큼도 봐주지 않는 사람이 저입니다. 반대로 누구든지 만나면 내 도움과 사랑이  필요한 것은 없을까부터 살피는 거룩한 버릇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호기로운 질문에  22절"일곱 번만이 아니라, 일흔 번을 일곱 번이라도 하여야 한다.” 베드로의 상상을 초월하는 대답을 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너무 과대평가해서 이런 말씀을 하시거나, 도덕적 이상주의자일까요? 아니면 우리 연약한 인간의 실상을 너무 몰라서 이런 실현 불가능한 말씀을 하실까요?  우리의 사람됨을 너무도 잘 아시는 분이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는지 살펴봅시다.

3. 용서할 줄모르는 종의 비유

이어서 예수님은 유명한 <용서할 줄 모르는 종의 비유>를 풀어 놓습니다. 이 비유에는 네 사람이 등장합니다. 어떤 임금(=종의 주인), 만 달란트 빚진 종, 백 데나리온 빚진 종, 종의 동료들. 그런데 이 비유는 <천국βασιλεία οὐρανῶν, the kingdom of heaven  비유>라고 맨 앞에 못박아 놓았습니다. 스토리는 어떤 임금님이 종들과 결산하는데 만 달란트 빚진 종에게 갚을 돈이 없으니  “그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고 명령합니다. 그렇게 해도 만 달란트에는 턱없이 모자랍니다. 26 그랬더니 종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참아 주십시오. 다 갚겠습니다' 하고 애원하였다. 27 주인은 그 종을 가엾게 여겨서, 그를 놓아주고, 빚을 없애 주었다.

여러분, 과연 이것이 현실 세계에서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그 종의 말도 현실성이 없고, 아무리 애걸복걸해도 임금님이 그렇게 엄청난 손해를 보면서 전액 탕감해 주는 것도 비현실적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천국비유입니다.
다음 장면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28 그러나 그 종은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하나를 만나자, 붙들어서 멱살을 잡고 말하기를 '내게 빚진 것을 갚아라' 하였다. 29 그 동료는 엎드려 간청하였다. '참아 주게. 내가 갚겠네.'  30 그러나 그는 들어주려 하지 않고, 가서 그 동료를 감옥에 집어넣고, 빚진 돈을 갚을 때까지 갇혀 있게 하였다.

아무리 비유지만 이 이야기를 들으면 인정머리라고는 먹고 죽을래도 없는 무자비한 종에 대해 나도 모르게 화가 치밀지요? 해도 너무 한 거지요. 자기가 탕감받은 어마어마한 빚에 견주면 티끌 같은 빚 받을려고 그렇게 악랄하게 굴다니 나라도 임금님께 달려가 저 은혜를 모르는 막돼먹은 종을 엄벌에 처해 달라고 호소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만 달란트는 일억 데나리온 입니다. 그러니까 백 데나리온 빚은 자기가 탕감받은 돈의 백만 분의 1에 불과한 것입니다.
31 다른 종들이 이 광경을 보고, 매우 딱하게 여겨서, 가서 주인에게 그 일을 다 일렀다. 32 그러자 주인이 그 종을 불러다 놓고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네가 애원하기에, 나는 너에게 그 빚을 다 없애 주었다.  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긴 것처럼,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겼어야 할 것이 아니냐?'  34 주인이 노하여, 그를 형무소 관리에게 넘겨주고,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가두어 두게 하였다.

얼마나 통쾌한 반전입니까? 영화라면 이 장면에서 기립박수라도 치며 휘파람을 불고 싶은 지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야기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일흔 번씩 일곱번 , 무한정 용서하라고 말씀하고는  이 무자비한 종은 단칼에 베어버리는 것은 앞뒤가 안맞는 것 아닌가요?

저는 이 종이 26절에서 임금님께 용서를 구한 것이 진정한 회개가 아니라서 용서받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증거는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긴 것처럼,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겼어야 할 것이 아니냐?'  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진정한 회개가 없는데도  무한 용서를 해주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면 악인들만 살판나고, 세상은 무법천지가 되겠지요.

나는 이 등장인물들 가운데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만 달란트 빚진 종, 아니면 백 데나리온 빚진 종, 아니면 동료 중 한 사람?
나는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내가 바로 만 달란트 빚진 종입니다. 나는 물론이요 처자식을 다 팔아도 갚을 길 없는 죄의 빚을 진 죄의 노예인데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내 죄짐이 풀렸습니다. 나의 가련한 모습을 보고 임금님이 불쌍히 여겨 갚을 수 없는 빚을 탕감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내게 사소한 빚을 진 내 믿음의 형제에게는 한 톨도 남김없이 그 빚을 악착같이 받아내야  직성이 풀립니다. 왜 그럴까요? 내가 탕감받은 것이 단지 빚 만 달란트가 아니라 나와 내 가족의 생명인데, 나는 돈 액수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가 빚더미에 눌려서 압사 직전에 해방되었는데, 가없는 은혜와 사랑을 헤아릴 눈이 감겨있기 때문입니다. 빚으로부터의 해방은 첫걸음이고, 나 때문에 노예로 팔릴뻔한 가족들도 함께 해방되었는데 그 은혜의 선물을 받아누릴 마음의 그릇이 없기 때문입니다. 완전히 죽기 일보 직전에 기적 같은 사랑으로 구원받은 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내가 예수 믿고 구원받은 후에 만 달란트 빚진 종이 받은 것과 같은 이 해방과 자유, 은혜와 사랑 앞에 그저 할 말을 잃고 나에게 긍휼을 베푼 그분에게 전심으로 감사의 예배를 드린 잊지 못할 시간이 있었습니까?

<왜 날 사랑하나?> 1.예수님 날 위해 죽으셨네 왜 날 사랑하나? 겸손히 십자가 지시었네 왜 날 사랑하나? 왜 날 사랑하나 왜 날 사랑하나? 왜 주님 갈보리 가야 했나 왜 날 사랑하나?

임금님은 나를 용서해 주어야할 아무런 의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탕감의 대가로 치러야할 손해는 엄청납니다. 그런데도 이 종은 그저 내가 죽다 살았다는 얄팍한 계산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용서하지 못합니다.

4.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같이

오늘은 광복 69주년 기념주일입니다. 우리는 미국에 살아서 아무 기념식도, 감흥도 없이 그냥 일년에 한번 있는 기념주일로 때우고 넘어갑니다. 한국에 살아도 기념식에 초대받은 사람 아니면 공휴일이라 놀러가기 바쁜 사람 중의 한 사람이겠죠.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광복절을 무심히 넘어가면 또다시 나라를 빼앗기는 비극을 당할지 모릅니다. 광복 69주년은 다른 말로 분단 69주년입니다. 내년이면 민족이 허리가 잘린지 70년이 된다는 말입니다. 남북 갈등은 물론 남남 갈등도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참된 용서와 화해의 정신이 사라져 오히려 세상 사람들보다 인정과 사랑이 메마른 사막 같은 성도와 교회가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는 이번 광복절 기념주일에 예수님이 가르치신 참된 용서의 정신을 회복해야 합니다. 천국에서 가장 큰 사람은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고, 성도 한 사람이라도 실족하게 해서는 안되고, 내게 범죄하더라도 단계를 밟아 화해에 힘쓰고,  용서하기를 예수님의 마음으로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내 앞에 있으면 뺨이라도 한 대 때리고, 침 뱉어주고 싶은 파렴치한 종이 바로 나라는 것을 확실히 깨닫고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지금 나에게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네 믿음의 형제 자매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고 묻고 계십니다. 내가 널 위해 십자가에서 살 찢고 피 흘려 너의 주홍같이 붉은 죄를 양털같이 희게 씻어 주었는데 너는 왜 형제의 사소한 잘못을 그렇게도 붙들고 늘어지고 있냐고 물으십니다.  그런 일 때문에 교회를 떠나고, 말을 안 하고, 밥을 같이 안먹는 것이 나의 십자가 사랑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다시 나를 십자가에 못박는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내가 어떻게 사회와 민족의 화해를 말하고, 민족통일을 말할 수 있겠냐고 안타까워 하십니다. 이런 우리가 어떻게 <화해의 대사>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겠냐고 가슴을 치며 울고 계십니다.


용서의 계절 / 이해인

새롭게 주어지는 시간, 시간을 알뜰하고
성실하게 사용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며 쓸데없이 허비한
당신을 용서해 드립니다.
나도 그렇게 했으니까요.

함께 사는 이들에게 바쁜 것을 핑계삼아
따뜻한 눈길 한번 주지 못하고
듣는 일에 소흘 하며 건성으로 지나친
당신을 용서해 드립니다.
나도 그렇게 했으니까요.

내가 어쩌다 도움을 청했을 때
냉정하게 거절한 당신을 용서해 드립니다.
나도 그렇게 했으니까요.

다른 사람에게 남의 흉을 보고 때로는
부풀려서 말하고 사실이 아닌 것을 전달하고
그것도 부족해 계속 못마땅한 눈길을 보낸
당신을 용서해 드립니다.
나도 그렇게 했으니까요.

감사보다는 불평을 더 많이 하고
나의 탓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말을
교묘하게 되풀이한 당신을 용서해 드립니다.
나도 그렇게 했으니까요.

사소한 일로 한숨쉬고 실망하며
밝음 웃음보다는 우울을 전염시킨
당신을 용서해 드립니다.
나도 그렇게 했으니까요.

나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다고요? 우리 교회 식구들 모두하고 잘 지낸다고요? 그걸로 내 할 일을 다했다고요? 내가 받은 갚을 길 없는은혜와 사랑을 내 믿음의 식구들에게 날마다 베풀며 사는 것이 그 사랑을 조금이나마 갚으며 사는 길입니다. 그런데 과연 나는 얼마나 그런 삶을 살고 있습니까? 내 몸 사리기 바쁘고, 내 할 일 다하고 짬이 나면 그때 가서 이웃 생각해서 언제 사랑할 시간과 돈이 생길까요?

사랑은 적극적인 행동입니다. 눈으로, 입술로 사랑을 그리지 말고, 온몸으로 실천하는 사랑이 진짜 사랑입니다. 그 사랑의 첫걸음이 바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용서입니다. 용서 없이는 한 걸음도 가까워 지지 못합니다. 하해 같은 주님이 베푸신 용서의 감격 없이는 내가 먼저 조건 없이 용서를 베풀지 못합니다. 용서하는 사람이 강한 사람입니다. 용서하는 사람이 이웃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오늘 우리에게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은 십자가의 용서의 환희와 행복을 날마다 나누면서 그것이 온교회에, 온세상에 가득한 <용서의 계절>을 만들라는 명령입니다.

목에 가시처럼 걸리는 주기도문의 한 구절,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고” 가 공염불이 아니라 진정한 기도가 되도록 용서를 생활화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시간, 기도하기 전에 다같이 잠깐 눈을 감고 아직도 내 마음에 걸리는 사람, 내가 아직 용서하지 못한 사람은 없는가? 내가 아직 만 달란트 탕감받은 종처럼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지 못한 사람은 없는가를 살펴봅시다. 만약 있다면 지금 하나님께 회개합시다. 그 사람이 남편, 아내, 시부모님, 형제, 친구 누구입니까? 누구든 용서하지 않으면 우리의 예배가, 기도가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산제물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오, 주님! 우리에게 회개의 영, 용서의 영을 부어주소서!

*묵상 포인트 *
1. 나의 ‘용서지수’는 얼마나 될까요?
2. 내가 제일 잘 못 참는 것은 무엇입니까?
3. 내가 믿음의 식구에게 죄를 지었을 때, 나는 어떻게 합니까?
4. 믿음의 식구가 내게 죄를 지었을 때, 나는 어떻게 합니까?
5. 용서의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추천하기   목록보기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545  2014년 1월 26일 주일예배 진신덕 목사님 설교 및 요약  [1]  관리자 2014/01/29 6787
544  2014년 9월 21일 진신덕 목사님 설교 및 요약  [1]  관리자 2014/09/22 6565
543  2014년 1월 19일 주일예배 진신덕 목사님 설교 및 요약  [4]  관리자 2014/01/23 6250
542  2014년 6월 8일 주일예배 진신덕 목사님 설교 및 요약  [2]  관리자 2014/06/09 5372
541  2014년 4월 20일 부활절 주일예배 진신덕 목사님 설교 및 요약  [3]  관리자 2014/04/21 5355
540  2013년 11월 17일 주일예배 분당우리교회 이찬수 목사님 설교  [3]  관리자 2013/11/19 5352
539  2010년 7월 18일 주일예배 Bill Stotts 목사님 설교    관리자 2010/08/14 5318
538  2010년 7월 25일 주일예배 박원근 목사님 설교    관리자 2010/08/14 5098
 2014년 8월 17일 주일예배 진신덕 목사님 설교 및 요약    관리자 2014/08/18 5085
536  2015년 5월 3일 진신덕 목사님 설교 및 요약    관리자 2015/05/04 5049
535  2014년 11월 30일 진신덕 목사님 설교 및 요약    관리자 2014/12/01 4910
534  2010년 8월 8일 주일예배 Bill Stotts 목사님 설교    관리자 2010/08/17 4835
533  2014년 9월 14일 진신덕 목사님 설교 및 요약    관리자 2014/09/15 4805
532  2007년 및 이전 설교 동영상에 관하여..    김용빈 2008/04/01 4694
531  2013년 12월 1일 주일예배 진신덕 목사님 설교 및 요약    관리자 2013/12/03 4686
530  2014년 6월 15일 주일예배 진신덕 목사님 설교 및 요약  [1]  관리자 2014/06/16 4635
529  2014년 3월 2일 주일예배 진신덕 목사님 설교 및 요약    관리자 2014/03/09 4590
528  2011년 9월 4일 주일예배 신정호 목사님 설교    관리자 2011/09/13 4538
527  2008년 5월 11일 어버이 주일예배 최민호 목사님 설교    김용빈 2008/05/12 4466
526  2014년 8월 31일 주일예배 진신덕 목사님 설교 및 요약    관리자 2014/09/01 4429

    목록보기   다음페이지 1 [2][3][4][5][6][7][8][9][10]..[28]   [다음 10개]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zero